2015년 1~2주 책 읽기

[구입한 책]
엄기호, 『단속사회』, 창비, 2014, 전자책 초판

[읽은 책]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I: 불에서 프로이트까지』, 남경태 옮김, 들녘, 2009 (읽는 중)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1』,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0, 세계문학판 1쇄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2』,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0, 세계문학판 1쇄 (읽는 중)
이현우, 『책을 읽을 자유』, 현암사, 2010 (읽는 중)
장정일,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의 독서일기』, 마티, 2014, 개정판 1쇄
장정일,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장정일의 독서일기』, 마티, 2014, 개정판 1쇄 (읽는 중)
엄기호, 『단속사회』, 창비, 2014, 전자책 초판 (읽는 중)

그간 책은 제법 읽었는데, 도무지 뭔가를 정리할 시간이 나지 않더라. 스스로에게 너무 부담을 주진 않기로 했다. 적당히 읽은 내용을 요약하는 정도로만 남겨둬야겠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생각의 역사 110점
피터 왓슨 지음, 남경태 옮김/들녘

지난 번 책읽기에서 건강이 걱정된다고 적었는데, 그 사이 안타깝게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작가/번역가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분이었는데 참 안타깝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슬람교는 신도들이 따라야 할 다섯 개의 ‘기둥’을 말한다. 첫째 기둥은 신도의 직업이고, 둘째는 기도다. 경건한 이슬람교도는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금요일 정오 기도는 이슬람교의 유일한 공식 행사이며 모든 남자가 참여해야 한다. 셋째 기둥은 자카zakah인데, 가난한 사람을 돕고 모스크를 짓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선 행위를 뜻한다.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이슬람 시대 이전의 아랍인들은 신들에게 세금을 바친 뒤에야 시장에서 향료를 팔 수 있었는데, 마호메트는 이 고대의 관념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넷째 기등은 라마단월에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금식하는 것이다. 금식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도 자주 행해졌지만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에 그런 관습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마지막 기둥은 순례(하지haj 혹은 하즈hazz)다. 신도는 남자든 여자든 여유가 된다면 평생 동안 한 번은 연중 신성한 때에 맞춰 메카를 방문해야 한다. 이 관념 역시 고대 태양 승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정기시가 끝난 뒤 카바에서 많은 회중이 모인다. (p. 390)

아랍어는 아담이 사용한 최초의 언어가 아니라 아라비아 반도 북서부에서 비교적 후대에 생겨난 언어다. 그저 마호메트의 가문인 쿠라이시 귀족 가문이 사용하던 언어였을 뿐이다. 그것이 코란의 언어가 되자 묘한 현상이 생겨났다. 이슬람교도들은 물론이고 현대의 문법학자, 문헌학자, 문학 비평가들도 흔히 아랍어가 다른 언어들보다 우월하며, 코란의 아랍어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고 말한다. 그 렇기 때문에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을 직접 아라비아어로 읽으며, 단 한 가지 번역(터키어 번역)만 공인하고 있다. 18세기에 아랍어의 기원이 밝혀졌고 외부에서 차용된 어휘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현대 이슬람 학자들의 견해는 변함이 없다. (p. 392)

우리 사회는 이슬람교에 대한 무지가 너무나 깊다. (최소한 겉으로는) 다종교를 표방하는 한국에서 그들에 대한 편견이 어찌나 깊은지. 업무 특성상 일하다 보면 이슬람교인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니 그들의 삶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슬람 뿐만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는데, 일독을 권한다. 로쟈의 저공비행에서 소개한 관련 서적도 참고하면 좋겠다.

+ 로쟈의 저공비행 – 현대 중동의 탄생

천일야화 18점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앞서 언급한 생각의 역사를 보건대, 『천일야화』는 중동 일대 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까지 아우르는, 범세계적인 이야기 모음집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1권의 인상깊은 문구를 아래 인용한다.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전자책을 이용하는 관계로 인용 페이지는 따로 적지 않는다.

우리가 읽은 어떤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죠. < 너의 비밀을 지키고 아무에게도 밝히지 말라! 그것을 밝히는 즉시 너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네 가슴이 네 비밀을 간직할 수 없거늘, 하물며 그것을 들은 사람의 가슴이 그것을 간직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 자기와 아무런 상관 없는 일들을 말하는 자는 달갑지 않은 소리를 듣게 되리라!>

책을 읽을 자유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사재기한 수많은 책 중 하나 이제야 읽기 시작했는데, 예전에 본듯한 글도 많다. 알라딘 서재도 꾸준히 보고있고, 지금도 구독하고 있는 한겨레21, 예전에 잠시 고독했던 시사인 등에서 그의 글을 많이 접했던 탓이겠지. 최근작인 『아주 사적인 독서』는 기대가 컸던 탓일까 별로였는데 이건 류의 서평은 아주 좋다. 쭉 읽고는 있는데 한 번에 여러 책을 읽다보니 언제쯤 다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요컨대, 책을 읽는 게 교양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는 게 교양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느라고 다른 열 권의 책을 놓치게 되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독서의 기술’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비독서의 전략’이다. 물론 이때의 비독서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무독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비독서란 “무수히 많은 책들 속에서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그 책들과 체계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하나의 진정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독서가는 책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다. 어떤 책이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책 읽기를 스스로 자제하는 사람, 그가 비독서가다. (p.45)

일단, 그가 보기에 윤리는 ‘노홧know-what’의 문제가 아니라 ‘노하우know-how’의 문제다. 즉 이성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자발적 대처의 문제다.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일상적인 윤리적 행위는 반사적이면서 즉각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윤리는 규칙보다는 습관을 따른다. 이것은 흔히 윤리적 행위를 윤리적 판단과 결부시켜서 이해하고자 하는 서구적 전통에 대한 도전을 함축한다. (pp.114~115)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10점
장정일 지음/마티

2010년부터 나온 시리즈 3권을 2014년 개정판으로 펴냈다. 기회다 싶어 사재기(?)해두고 묵혀두고 있었는데, 회사에 두고 틈틈이 읽었다. 요근래 서평/비평서를 많이 읽게 된다.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이 많아 그런가. 취향이 너무 단일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다음 번부터는 염두에 두고 다양한 종류의 책을 골라야겠다.

“10대 후반에 독립하고 동거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 선진국의 10대와 지체 현상 속에서 종속된 존재로서 어둡게 20대 초반을 맞는 우리나라의 10대들이 경쟁을 하면 누가 이길 것인가?” (p. 17)

경제상의 불균형은 결국 언젠가 폭발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혁명이든 공황이든 그 댓가는 항상 처참하다. (p. 21)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의 성공을 빌어 주는 게 아니라, 자식의 성공을 통해 자신의 ‘원풀이’를 하겠다는 의식이 더 강하다. 자식의 성공이 부모의 원풀이와 동체이기 때문에, 자식의 홀로서기는 더더욱 용납되지 않으며, 반드시 부모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박기백은 이렇게 항변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는 것도 부자지간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입니다. 하나의 인격체와 다른 인격체의 만남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종속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부모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효는 아주 간단하다. 대부분 그것은 공부 잘하는 것, 펜대를 굴리며 사는 것이고 그 가운데 최상은 검판사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사장이나 기술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궁상스러운, 교편 잡은 아들을 더 좋아하는데, 공부 잘 해서 펜대를 굴리는 게 효도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직도 조선시대다. 사농공상에서 사 자리를 차지하는 게 효도의 다란 말이다. (p. 77)

주시해야 할 것은, 배타주의 를 뒤집으면 곧바로 근친상간이 된다는 사실이다. 내 피를 다른 인종과 나누기 싫다는 순혈주의와, 내 재산을 다른 외부인과 나누기 싫다는 인색함이 근친상간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근친상간은 부적절한 성적 관계만을 지칭하는 악덕이 아니라 사회적 은유로도 전용이 가능한 개념이다. 나치즘이나 시오니줌은 물론이고 이 소설의 맥락을 부분적으로 설명해 주는 백호주의白濠主義 역시, 낯선 것과 어울려 살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을 한번도 타자화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범하게 되는 사회적 근친상간이라 할 수 있다. (p. 101)

세계화가 얘기된 지 오래인 터에, 어느 특정 국가의 작품이 희귀한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들의 세계화에 뭔가 허방이 있다는 뜻이다. (p. 101)

『직접행동』의 대의를 파악하건대, 저자가 말할 필요도 없었던 직접 행동의 반대말은 ‘간접행동’이고, 그것은 ‘선거(투표)’를 가리킨다.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가 시민의 대의를 완성해 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시민들의 직접행동에 의해 보완되어야 할 만큼 부차적인 간접행동으로 전락했다는 인식은 무척 놀랍지만, 새삼스럽진 않다. (p.105)

애인이나 부부 간에는 말을 적게 해야 한다. ‘소통’이랍시고, 토닥토닥 얘기를 주고받다가 사랑싸움이나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예는 참 많다. (p. 123)

우등생 멘털리티는 대체로 규격주의, 완전주의, 경건주의에 빠진다. 말하자면 창조적 두뇌 회전이 느리고 약삭빠른 이기적 사고방식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p. 138에서 재인용) – 신용구, 박정희 정신분석, 신화는 없다, 뜨인돌, 2000

글쓰기의 가짓수는 무척 많고, 교양이란 굉장히 폭이 넓은 세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글쓰기 하면 곧바로 시나 소설을 떠올리고, 그걸 읽는 게 교양의 다인 양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장르의 문학이 글쓰기의 피라미드 가장 높은 꼭대기에 좌정하고 있으면서 그 외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사회, 고작 시집이나 소설 몇 권을 읽는 것으로 교양인 행세가 가능한 나라는 가망이 없다. (p. 152)

인구 유동성이 많은 현대 사회를 일컬어 이민자 사회라고도 하고, 노마드(유목) 사회라고도 한다. 누군가 세계는 평평하다고 했지만, 이민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구 유럽의 경우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경우에서와 같이, 이민자는 주로 동유럽・아프리카・동남아시아의 저개발 국가로부터 유입된다. 그런데 이민에 관한 가장 성찰적인 에세이 가운데 하나인 존 버거의 『제7의 인간』(눈빛, 1992)은, ‘이민자는 그가 속한 사회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진취적이고, 우수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기가 속했던 사회의 재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고학력 동남아 노동자들이나 조선족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의 진취성과 열의는 제1세계의 하층계급을 사지로 몰아넣기도 하는데, 그것이 신인종주의와 결합한 극우 정치가들이 인기를 얻는 비결이다. (pp. 26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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