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달 아래

복거일, 『파란 달 아래』[1. 나는 리에게 한껏 밝은 웃음을 지어 대꾸했다. 그리고는 좀 겸연쩍어져서, 흘긋 뒤를 돌아다보았다. 뒤 창문으로 달이 보였다. 지평 바로 위에 걸린 파란 달이 하도 아름다워서, 가슴속 어디가 막히는 듯했다. p.41

우리를 보자, 그 아이가 멈춰서더니 손을 흔들었다. 우주복 가슴에 파란 새가 그려져 있었다.
무엇이 문득 가슴에서 차오르면서 목이 뻣뻣해졌다. 살아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거친 들판에서 비정하게 내리지지는 햇살을 받으며 혼자 서서 손을 흔드는 그 아이의 모습은 그리도 외롭고 연약하면서도 밝고 용감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면서 가슴을 펴고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켜본 적이 없는 아이가, 맑은 시냇물에 손을 담근 적도 바닷물에 뛰어든 적도 없는 아이가, 파란 하늘 속으로 솟구쳐오르는 새의 힘찬 날갯짓을 본 적이 없는 아이가, 결코 새가 날 수 없는 빈 하늘 아래 파란 새의 모습을 가슴에 품고서 손을 흔드는 모습은 내 가슴에 아프도록 또렷이 새겨졌다. 눈시울이 따가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리를 따라, 나도 굼뜨게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물론 아이는 우리를 보지 못할 터였다. pp.134~135](문학과지성사, 1992)

복거일 194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소설가이자, 시인·사회 평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2.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원안이 된 책으로 영화제작사에서 개봉 후 서둘러 판권을 사들였다.] 『높은 땅 낮은 이야기』 『역사 속의 나그네』[3. 과학문화재단을 통해 연재한 바 있다.] 『파란 달 아래』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 『목성 잠언집』 『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 등과 시집 『五丈原의 가을』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가 있다. 또한 사회 평론집으로 『현실과 지향』 『진단과 처방』 『쓸모 없는 지식을 찾아서』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역사를 이끈 위대한 지혜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등과 산문집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 『소수를 위한 변명』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4. 대학 1학년 신입생 시절, 나는 이 책으로 글쓰기를 공부했다. 『파란 달 아래』에는 영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나오는데 영어 공용어론을 주장하는 저자의 입장을 생각해볼 때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슬쩍 살펴보았으나, 영어로 되어 있어서, 무슨 얘기인지 알기 어려웠다. 요즈음 남반부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북반부에서 나오는 것들도 글자들을 흔히 영어로 써놓았다. 조선어는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나오는 것이 어느 사이엔가 상례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긴 남반부에선 유치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어떤 집에선 아예 갓난애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다는 얘기도 들렸다. p.37

옆에서 보니, 남반부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너무 많이 섞어 썼다. 물론 뜻밖의 일은 아니었지만, 영 마음에 거슬렸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하긴 요즈음은 우리 기지 사람들도 점점 영어를 많이 섞어 쓰고 있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모두 ‘채널’이란 말을 쓰고 있어서, ‘통로’란 말을 쓰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릴 지경이 되었다. p.69]『동화를 위한 계산』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복거일의 세계환상소설사전』을 펴냈다.

이 소설을 과학소설로 분류하는 이유

『파란 달 아래』는 이전에 발간된 작품인 『비명(碑銘)을 찾아서』, 『역사 속의 나그네』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단지 배경이 우주로 바뀌었고 남과 북의 현 상황을 우주로 연장했을 뿐이다. 단순히 미래의 이야기만을 서술했다면 환상소설이라 불려야 마땅하지만,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을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그럴 듯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소설이라 분류할 수 있다.
레이디 오렉스로 대표되는 로봇의 미래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5. ‘흠.’ 나는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진짜 녀자들은 될 수 있는대루 자기 몸을 많이 보이려 애쓰구. 감출 게 없을 녀자 로봇들은 되도록이문……’ p.84

“그래서 ‘중간 단계론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지구 생물의 진화에서 인류가 맡은 역할은 기계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꺼지 주장합니다.” pp.174~175]이 담겨있으며, 토론회에서 나타난 중력이 인간의 근육에 미치는 영향 등은 다분히 과학소설로서 독자에게 성찰의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성장소설로서 주인공 리명순의 심리변화
『파란 달 아래』는 성장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데, 주인공 리명순의 심리변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 새로운 연인인 리명규를 만나면서 시작된 변화는 리명규의 죽음 이후 완성에 가깝게 된다. 도박이나 체제의 변화 등에 대한 생각이 차차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관들을 접하면서 사회주의 체제 아래 교육받았던 것들이 하나 둘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후반부에 이르러선 기지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우기까지 한다.

분단문학의 새로운 시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분단문학은 전쟁의 상흔을 나타내는데 주력했다면, 이 소설은 이미 분단 상황이 백 년 가까이 지난 미래의 상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념 등의 과거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쓰였다. 북의 여성인 리명순의 관점에서 그려졌기에 초반부엔 남에 대한 비판이나 회의가 보이긴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러한 모습은 사라지고 있다. 이는 평화적인 화해를 뜻하며 한쪽에 의한 일방적인 통일이라기보다는 쌍방의 양보와 합의에 의한 통일을 그리는 것이다.[6. 지금 우리는 통일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그들의 희망과 걱정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우리 자신의 견해를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여길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p.316]

본 내용은 수업을 위해 읽고 작성한 것으로 2007/05/28 작성되었으며, 2007/06/04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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