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과 조선성리학, 진경산수화

지금은 끝나고 없는 우암 송시열 탄신 400주년 기념 전시회에 다녀온 감상기이다.
2007/05/31에 작성된 내용을 편집하였다.

나는 전시회에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간송미술관이란 곳을 알지 못했다. 조사해보니 우리의 역사와 예술을 조명하는 부분에서 간송미술관의 역할은 크다고 한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로 감히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자부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간송미술관의 첫 느낌은 굉장히 아담하고 조용하다는 것. 일본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깔끔하고 담백하게 조형된 정원과 아담한 크기의 전시관. 우리의 긴 역사 중 일부가 이 작은 미술관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지고, 시간마저 정지했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우암 송시열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 의해 조선화 된 조선성리학을 이은 학자이다. 당시의 조선성리학 이념은 미술에까지 전해져 우리나라에서 크게 발달한 진경산수화를 낳게 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과장된 그림들이 우리나라의 독특한 화풍으로 정착된 것이다. 창강 조속이나 겸재 정선의 두드러진 활약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겸재 정선은 묵법과 선묘의 절묘한 조화로 중국에까지 그 이름을 드높인 조선이 자랑할만한 세계적인 화가였다. 이번 전시가 우암 송시열의 탄신을 기리고 있지만, 당시의 대표적 화가였던 겸재의 그림이 대다수인 것은 이러한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초문답도
『어초문답도』
전시관에는 단순히 이 시대의 그림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중 『어초문답도』는 어부와 초부의 문답을 통해 성리학 이념을 쉽게 이해시키고자 그린 그림으로 기존의 작품에는 아직 진경산수화가 자리 잡지 못한 시대의 흔적이 나타난다. 중국의 산천을 옮겨놓은 듯한 모습과 중국 옷을 입은 사람들은 저것도 우리의 그림인지 의심하게 한다.
이것들은 모두가 관람객을 위한 미술관 측의 배려라고 한다. 진경산수화에 익숙지 못한 관람객을 배려하고자 진경산수화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중국풍의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사람들의 이해를 도왔다는 설명이다.

그에 반해 진경산수화의 대표화가인 겸재의 그림은 중국과는 전혀 다른 조선의 산천을 담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다. 토산을 그릴 때는 묵법을 사용하여 수풀이 무성한 나무들을 표현하였고, 암산을 그릴 때는 선묘를 이용하여 날카로운 바위산을 잘 표현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기존의 중국풍의 옷이 아닌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조선사람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전시장 초입에 늘어서 있는 겸재의 『해악전신첩』을 보면 이러한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단발령망금강」이란 작품에는 갓을 쓴 선비들이 수풀이 무성한 토산에 서서 반대편의 바위산인 내금강을 바라본 모습이 그려있는데, 앞서 설명한 진경산수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기존에 보아오던 서양의 미술작품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모습이었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해악전신첩』을 살펴보느라 한참을 소비했는데,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우리 옛것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느낌이었다.

어떠한 것이든지 자신이 본래 갖고 있던 것이 가장 좋다는 말이 있다. 비록 현재는 서양의 의복과 주택에서 살고 서양의 교육에 길들어 있지만, 역시 우리의 입맛에는 우리의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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